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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립적 자아' [철학자 최진석]

기사입력 2023.12.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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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에 지친 사람들이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휴대전화도 끄고 텔레비전도 안 보면서 어디 가서 혼자 사흘만 있어 보면 좋겠다.” 여러분들도 이런 생각, 해보셨죠? 
 
그런데요, 혼자서 편안한 상태로 사흘을 보낸다? 그게 과연 말처럼 쉬울까요? 편안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사람, 엄청난 수양이 된 사람이에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여러분은 온종일 편안히, 혼자서 보낼 수 있습니까? 매일 시간에 쫓겨 산다고 투덜대지만, 막상 나에게 사흘의 시간이 뚝 하고 떨어질 때, 아무런 마음의 혼란 없이 외롭지 않게 그 하루를 오롯이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혼자서 사흘 정도를 마음의 동요 없이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독립적 자아가 준비된 사람이에요. 혼자 있어 보고 싶다고요? 혼자 있기 어렵습니다. 혼자 한번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요?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쉽지 않을 겁니다.
 
주변 조건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잘 감당을 못할 거예요. 자기가 독립적 자아로 성숙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버거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자기가 사실은 자기에게 갖추어져 있는 어떤 틀에 의해 지배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틀이라는 것은 이념적인 성격을 가질 것이고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것일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자기가 관계 속으로 스며들지 않으면 편안함을 느낄 수 없는 구조가 자기한테 있어요. 집단 속에 용해된 자아가 더 편안해져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행할 때 어떤 모습들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선진국 사람들의 여행 풍경을 보면 우리하고 많이 달라요. 여러 명이 함께하는 여행에서도 모두 각자가 조용히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같이 온 사람들끼리 놀거나 얘기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시간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얘기예요. 심지어 다정한 연인끼리 와서도 각자 놀거나 책 읽는 시간을 따로 갖더라고요.
 
우리는 어떤가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함께해야만 합니다. 함께 게임을 하고 모두 함께 술을 마시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행동을 통일하지 않는 일이 허용되지 않아요.
 
우리나라 여행단 풍경 속에서 혼자 조용히 독서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여기서 어느 모습은 좋고 어느 모습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모습이 더 친밀하고 끈끈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우리의 여행 모습이 아직 독립적인 주체의식이 약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군요. 집단을 이겨낼 수 있는 독립성이 부족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기 욕망이 집단의 체계를 뚫고 나오지 못하는 것이지요. 집단이 ‘나’들을 수용하여 소화해 버리면 안 됩니다. ‘나’들의 자발적 총화로 집단이란 것은 이루어질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독립적 자아로 재무장하지 않고, 독립적 자아로 새로워지지 않고 창의적 생각이 가능하겠습니까? 상상력이 가능하겠어요? 인격적 기품, 학문적 성숙, 창의적 상상력,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독립적 주체력의 파생 상품들입니다.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소나무, 2013, 19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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